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시는가?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실까?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와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아닐까.”
관계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습니다.
실수한 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스스로도 만족할 수 없는 선택을 반복했을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을 누가 다시 받아줄까.”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자유를 원했고, 자기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다만 아들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품꾼으로라도 받아 달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상 밖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아들이 집에 가까이 오기도 전에, 아버지가 먼저 그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달려갑니다.
변명을 듣기 전에. 설명을 요구하기 전에. 과거를 따지기 전에.
먼저 안아 줍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설명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비유의 중심이 “돌아온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중심에는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있습니다.
누가 먼저 찾았을까요.
아들이 아버지를 찾은 것일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이야기 이전에,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의 비유가 둘째 아들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멋대로 살았던 둘째 아들도, 스스로 옳다고 여겼던 첫째 아들도,
모두 아버지의 집 밖에 있었습니다.
티모시 켈러는 복음이 둘째 아들의 길도, 첫째 아들의 길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어쩌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가?”
가 아니라,
“혹시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이 있는가?”
예수님의 비유는 그 질문에 조용히 대답합니다.
돌아갈 자격을 증명한 뒤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보다, 우리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처음 오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