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니혼바시
작은 걸음으로 익숙해져 가는 시간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 되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생활 방식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땅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작은 걸음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조금씩 익숙해져 갑니다.
조금씩 열리는 길
여름 내내 기다리던 비자가 마침내 발급되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하루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언제 결정이 날지 알 수 없었고, 앞으로의 계획도 선명하게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필요한 때에 길이 열렸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원하는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도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하게 흐르고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언어의 벽 앞에서
가을이 되면서 일본어 설교를 계속 맡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어의 어려움보다 제 자신의 부족함입니다.
모국어로도 말씀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다른 언어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
조심스럽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설교자는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내가 잘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만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일본 성도들은 늘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격려가 있었기에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일본을 만나다
가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되는 노인요양시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교회 밖의 일본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일터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는 설교 준비를 위해 배우는 일본어와 또 달랐습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일상을 나누면서,
비로소 일본 사회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교회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삶의 마지막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곁에 머무르는 것 역시 복음의 중요한 모습일 것입니다.
감사의 이유
아내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항암치료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예상보다 좋은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건강하게 식사할 수 있는 날.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날.
서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
그 모든 것이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작은 걸음의 힘
돌아보면 지난 몇 달 동안 특별한 기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걸음들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한 번의 설교.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대화.
한 번의 식사.
그리고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시간들.
우리는 종종 큰 변화만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은 걸음을 통해 사람을 빚어 가시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일본 하늘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멉니다.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그 작은 걸음이 쌓여 어느 날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 이 글은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늘의 걸음 속에서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